천천히 불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천천히 불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길을 밝히던 가로등도 어느새 희미해지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점 줄어든다  
도시의 소음이 저 멀리서 아득하게 들릴 뿐  
내 방 안은 고요하다  
모든 게 잠시 멈춘 듯한 이 밤  
나는 가만히 앉아 오늘을 되짚는다

별일 없던 하루였다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특별한 이야기도 없고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도 없었다  
늘 그렇듯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습관처럼 핸드폰을 확인하고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같은 사람들과 같은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헛헛하다  
아무 일 없이 흘러간 하루가  
왠지 모르게 아쉬운 기분  
‘이렇게 지나가도 괜찮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사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간다  
조금 더 생산적이어야 하고  
조금 더 특별해야 하며  
남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기준들이  
스스로를 조급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이어질수록  
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사실은  
이렇게 아무 일 없는 하루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간  
점심시간에 친구와 나눈 별 의미 없는 농담  
퇴근길에 흘러나오던 노래 한 곡  
그리고 밤이 되어  
이렇게 조용히 앉아 있는 순간까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던 그런 장면들이  
어느새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큼 거창하지 않아도  
그저 오늘 하루,  
나만 아는 작은 순간들이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된다  
결국 우리의 삶을 채우는 건  
그런 사소한 조각들이다

잠시 핸드폰 화면을 내려두고  
창문을 열어본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괜히 마음이 차분해진다

가끔은 이렇게 멈춰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무언가로 채우지 않아도 괜찮고  
오늘을 특별하게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

내일은 또 내일의 속도로 흘러가고  
나는 또 그 속도를 따라갈 테니까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

불을 끄기 전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뇐다  
오늘도 잘 지나왔다고  
별일 없던 하루였지만  
그 안에 충분히 나다운 순간이 있었다고

그렇게 하루의 끝에서  
내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고  
아무도 모르게  
조금 더 단단해진다